생각에도 신진대사가 필요하다
서막
칠석이던 어제, 거리에서 장미를 든 젊은 연인들을 여럿 보았다.
오늘 아침 문득 견우직녀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기억하는 판본에서는 견우가 직녀가 목욕할 때 옷을 훔쳐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고 결국 아내로 삼는다. 완전히 추행이자 절도 아닌가.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 민간 설화가 되었지? 혹시 허난 치현의 수박 도둑과 그를 감싸던 민경들도 이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도둑질이 아니라 따온 것”이라고 여긴 건 아닐까 싶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야기는 여러 버전이 있고, 어느 것도 내가 기억한 것처럼 허술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전생의 인연과 말을 하는 소처럼 두 가지 복선을 깔아 견우가 옷을 가져가는 장면이 필연처럼 느껴지도록 한다. 내 기억 속 버전은 구조가 빈약하고 버그투성이였다.
성찰
그러니 문제는 설화나 “수박 민중”, 혹은 경찰에 있지 않다. 나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어린아이는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라며 자랑하길 좋아한다. 어른은 그런 표현을 입에 올리지 않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부모님의 말이라면 옳다고 여긴다. 생활 상식이나 역사 일화라면 더더욱 그렇다.
사고가 굳고 독선적인 태도는 경험주의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가치관, 사고틀, 지식에 기반해 말하고 행동하지만, 그 출처가 애초부터 정확하다는 보장은 없다. 민간 설화의 상당수는 어릴 적 들은 이야기나 만화책으로 접한다. 이야기 자체를 잘못 기억하거나, 전달이 부정확하면 사실과 다른 내용이 머릿속에 남는다. 사소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다시 확인하지 않으니, 잘못된 지식을 평생 품고 살게 된다.
수행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기억이 틀릴 수 있음을 알 때 겸손과 신중, 포용이 자리 잡는다. 그래야 행동은 겸허해지고 말은 정확해지며, 배우려는 마음이 유지된다.
어떤 정보든 무턱대고 믿지 말자. 눈으로 본 것, 부모·선생·책에서 들은 것도 오류일 수 있다. 하나의 개념이나 사건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근원을 추적하고 발전의 맥락을 살피며 여러 자료를 교차 검증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 승자가 서사를 쥐는 사회과학과 역사 분야에서는 더욱 중요하다.
지식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자. 천문학, 정보기술, 생명과학, 의학 등 자연과학은 꾸준히 진화한다. 이론이 하루아침에 뒤집히지는 않더라도 기술은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예컨대 백혈병의 5년 생존율은 1960년대 14%에서 2007년 64%까지 높아졌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불치병으로 여긴다. 사고를 갱신하지 않으면 낡은 결론에 묶인 채 살 수밖에 없다.
게시일: 2019년 1월 2일 · 수정일: 2026년 1월 14일